고속도로 분홍색·초록색 유도선의 뜻, 아이 그림에서 시작된 노면 색깔 유도선 읽는 법

2026. 10. 6. 14:41ㆍ노면표시·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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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가는 고속도로 분기점에서는 표지판에 적힌 지명을 읽고, 내가 가야 할 방향이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판단하고, 그 방향 차로로 옮겨 가는 일을 몇 초 안에 끝내야 한다. 이 판단이 늦으면 갈림길 바로 앞에서 급하게 핸들을 꺾게 된다. 그런데 요즘은 갈림길이 가까워지면 바닥에 분홍색과 초록색 선이 나타난다. 표지판의 지명을 다 읽기도 전에 갈림길이 다가오는 순간, 이 선은 어느 차로를 따라가면 원하는 방향으로 빠져나가는지 바닥에서 바로 알려 준다. 정식 이름은 '노면 색깔 유도선'이다. 2011년 고속도로 분기점 한 곳에서 시작된 이 선은 지금 고속도로에만 900곳이 넘게 칠해져 있고, 올해는 밤에도 색이 제대로 보이도록 칠하는 방법까지 바뀌고 있다. 이 선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부터, 색을 읽는 규칙과 따라갈 때 주의할 점까지 차례로 정리한다.

 

아이 그림에서 시작된 선

노면 색깔 유도선을 처음 떠올린 사람은 한국도로공사 직원 윤석덕 씨다. 그는 2009년 인천 쪽에서 일하던 시절 자신도 출구를 잘못 빠져나간 경험이 있었다고 한다. 그가 특히 고민한 곳은 서해안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가 만나는 경기도 안산분기점이었다. 갈림길에서 길을 잘못 들어 사고가 잦던 이곳을 두고 고민하던 그는, 집에서 아이들이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다가 길에도 색을 칠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문제는 법이었다. 당시 도로교통법이 정한 노면표시의 색에는 분홍색이 없었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경찰에 잡혀갈 수도 있다는 걱정이 나올 정도였지만, 그는 안전을 위한 일이라며 뜻을 같이해 준 고속도로순찰대 경찰관과 협의를 거쳐 2011년 안산분기점에 처음으로 색깔 선을 칠했다. 효과가 확인되자 한국도로공사는 2014년 이를 내부 기준으로 받아들였고, 국토교통부는 2017년 아주대학교에 효과 분석을 맡긴 뒤 「노면 색깔 유도선 설치 및 관리 매뉴얼」을 만들었다. 2021년 4월에는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의 노면표시에 정식으로 포함됐다. 첫 선을 칠한 뒤 법에 들어가기까지 10년이 걸린 셈이다.

 

색깔을 읽는 규칙

유도선은 차로의 한가운데를 따라 길게 이어 그린다. 매뉴얼은 선의 폭을 45~50cm로 정하고 있다. 처음에는 폭이 1m에 이르렀지만, 넓은 도색 면이 오토바이를 미끄러지게 할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좁혔다고 한다. 색은 갈래의 수에 따라 정해진다.

 

갈래가 하나일 때: 분홍색

본선에서 한 방향으로만 갈라져 나가는 곳에는 분홍색 선 하나만 칠한다. 분홍색 선을 따라가면 그 출구로 빠져나가고, 선이 없는 차로는 본선을 계속 달린다.

 

갈래가 둘일 때: 오른쪽은 분홍, 왼쪽은 연한 녹색

두 방향으로 갈라지는 곳에서는 중앙선에서 먼 쪽, 즉 오른쪽으로 가는 차로에 분홍색을 칠하고, 중앙선에 가까운 왼쪽으로 가는 차로에 연한 녹색을 칠한다. 그래서 두 색의 선이 나란히 달리다가 갈림길에서 각자의 방향으로 휘어 나가는 모습이 된다. 갈래가 셋이면 길가 쪽부터 분홍색, 연한 녹색, 진한 녹색 순서로 칠하도록 돼 있다. 색만 기억해 두면 처음 가는 분기점에서도 '오른쪽 갈래는 분홍'이라는 기준으로 미리 차로를 고를 수 있다.

 

고속도로 분기점에서 오른쪽 갈래로 이어지는 분홍색 선과 왼쪽 갈래로 이어지는 연한 녹색 선
갈래가 둘이면 오른쪽으로 가는 차로는 분홍색, 왼쪽으로 가는 차로는 연한 녹색이다.

 

선을 따라가기 전에 확인할 것

유도선의 색은 방향만 알려 줄 뿐 목적지를 알려 주지는 않는다. 분홍색 선이 서울로 가는지 부산으로 가는지는 분기점마다 다르기 때문에, 어느 색을 따라갈지는 반드시 머리 위 도로표지판의 지명을 보고 정해야 한다.

 

유도선은 진행 방향을 안내하는 선이지, 차선처럼 넘지 못하게 막는 선이 아니다. 차로를 나누는 흰 실선은 그대로 지켜야 하고, 유도선과 차선이 다르게 보인다면 차선을 따르는 것이 먼저다. 선을 따라가는 동안에도 늦게 방향을 정한 옆 차가 갑자기 끼어들 수 있으니 옆 차로의 움직임을 함께 살펴야 한다.

 

가장 위험한 순간은 갈림길 바로 앞에서 색을 잘못 고른 것을 알아챘을 때다. 이때 여러 차로를 한꺼번에 가로지르거나 갈림길 앞 빗금 구역으로 들어가면 큰 사고로 이어진다. 갈림길 앞 빗금은 차가 들어가면 안 되는 안전지대 표시다. 길을 잘못 들었다면 그대로 진행한 뒤 다음 출구에서 돌아오는 편이 훨씬 안전하다.

 

처음 가는 분기점에서의 순서

  1. 출구를 미리 알리는 예고 표지에서 내가 갈 지명이 왼쪽 갈래인지 오른쪽 갈래인지 확인한다.
  2. 바닥에 유도선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 방향의 색을 찾는다. 오른쪽 갈래는 분홍, 왼쪽 갈래는 연한 녹색이다.
  3. 갈림길에 닿기 전에 여유 있게 그 색의 차로로 옮긴다. 방향지시등을 켜고 한 번에 한 차로씩 옮긴다.
  4. 선 위에서는 앞차와의 거리를 넉넉히 두고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5. 이미 늦었다면 미련 없이 지나치고 다음 출구를 이용한다.

 

숫자로 본 효과

항목 내용
첫 설치 2011년, 안산분기점
안산분기점 사고 2010년 25건 → 2011년 3건
2017년 분석(2014년 설치 76곳) 나들목 22%, 분기점 40%, 평균 27% 감소
고속도로 설치 수 2015년 77곳 → 2023년 900곳 넘게
법적 근거 2021년 4월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노면표시

 

효과가 숫자로 확인되자 설치는 빠르게 늘었다. 2015년 77곳이던 고속도로 유도선은 8년 만에 열 배 넘게 늘었다.

 

2017년 분석은 2014년에 유도선을 칠한 76곳을 대상으로, 칠하기 전과 후의 사고를 비교한 결과다. 분기점에서 효과가 더 컸던 것은, 두 방향 이상으로 길이 갈리는 곳일수록 운전자가 헷갈리기 쉽기 때문으로 보인다. 안산분기점의 25건에서 3건은 88%가 줄어든 숫자다. 갈림길 사고는 대부분 마지막 순간의 급한 차로 변경에서 나온다. 유도선은 운전자가 갈림길에 닿기 훨씬 전에 차로를 미리 고르게 만들어, 그 마지막 순간 자체를 줄인다. 안산분기점처럼 한 해 20건이 넘던 사고가 몇 건으로 줄어든 곳이 생긴 이유다.

 

도심 교차로의 유도선

유도선은 고속도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차로가 많고 모양이 복잡한 도심 교차로에서는 좌회전이나 회전하는 차가 교차로 안에서 따라갈 길을 분홍색 곡선으로 그려 두기도 한다. 회전 방향이 하나뿐인 곳에는 고속도로와 마찬가지로 분홍색 한 줄을 그린다. 교차로 안에는 차선이 없어서 회전하는 차들이 서로의 길을 침범하기 쉽다. 특히 좌회전 차가 두 줄로 나란히 돌 때 바깥쪽 차가 안쪽으로 밀려들면 접촉사고가 나기 쉬운데, 바닥의 곡선이 줄마다 돌아 나갈 경로를 따로 잡아 준다.

 

다만 도심에서는 기준을 지키지 않은 유도선도 있다. 제주교통연구원장을 지낸 한 전문가는 2025년 기고에서 제주의 한 교차로 유도선이 매뉴얼과 반대 색으로 칠해져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니 유도선은 길을 미리 짐작하게 돕는 보조 수단으로 보고, 마지막 판단은 표지판과 차선, 신호로 하는 것이 맞다. 흰색·노란색·파란색 차선이 각각 무엇을 뜻하는지는 차선 색상 글에 정리해 두었다.

 

도심 사거리에서 좌회전 경로를 따라 곡선으로 그려진 분홍색 유도선
교차로 안에서는 분홍색 곡선이 회전하는 차가 따라갈 길을 잡아 준다.

 

밤이 되면 하얗게 보이던 문제

유도선에도 숙제가 있었다. 밤에 전조등을 받으면 분홍색과 초록색이 모두 하얗게 보이는 '백색현상'이다. 노면표시에는 빛을 되돌려 보내도록 작은 유리알을 섞는데, 투명한 유리알이 빛을 하얗게 반사하면서 원래 색을 덮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유리알을 뺄 수도 없다. 유리알은 밤이나 비 오는 날 노면표시를 보이게 해 주는 핵심 재료이기 때문이다. 밤에 갈림길에서 색을 구분하지 못하면 유도선의 의미가 사라진다. 유리알이 빛을 운전자 쪽으로 되돌려 보내는 원리는 시선유도표지 글의 재귀반사 설명과 같다.

 

한국도로공사 서울경기본부는 유리알 겉면에 도료와 같은 색을 입힌 '유색 유리알'을 만들었다.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검사에서 밤에도 원래 색이 유지되는 것이 확인됐고, 2025년 8월 한 나들목에 시범으로 칠한 뒤 2026년 5월에는 수도권의 고속도로 8개 구간으로 넓혔다. 아직 모든 유도선이 바뀐 것은 아니므로, 비 오는 밤처럼 색이 흐릿해 보이는 날에는 낮보다 일찍 표지판을 보고 차로를 정해 두는 것이 좋다.

 

분홍과 초록이 알려 주는 것

노면 색깔 유도선은 '어느 차로를 따라가면 되는가'를 바닥에서 미리 알려 주는 선이다. 오른쪽 갈래는 분홍, 왼쪽 갈래는 연한 녹색이라는 규칙만 알아 두면 낯선 분기점에서도 한결 덜 당황한다. 그러나 선이 알려 주는 것은 방향이지 목적지가 아니다. 표지판으로 목적지를 확인하고, 색으로 차로를 고르고, 놓쳤다면 다음 출구를 택하는 것. 아이 그림에서 시작된 이 선을 가장 잘 쓰는 방법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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