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막 도로 옆 자갈 오르막의 정체, 브레이크 고장 차를 세우는 긴급제동시설

2026. 10. 4. 14:42ㆍ도로 구조·사고 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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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인천의 한 삼거리에서 25톤 화물차가 신호를 기다리던 차 7대를 잇달아 들이받았어요. 운전자는 경찰에 달리던 중 브레이크가 들지 않았다고 말했어요. 평지에서도 이런 일이 생기는데, 몇 킬로미터씩 이어지는 내리막에서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으면 차는 점점 더 빨라질 뿐이에요. 그래서 길고 가파른 내리막 가운데 일부에는 마지막 비상구가 마련돼 있어요. 도로 옆으로 갈라져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자갈 깔린 차로, 바로 '긴급제동시설'이에요. 이 시설이 실제로 사고를 막은 창원터널의 사례부터 따라가 볼게요.

 

2024년 11월, 창원터널 내리막에서 있었던 일

2024년 11월 26일 오전 9시 10분쯤, 창원터널을 빠져나와 창원 방향 내리막을 내려가던 5톤 화물차의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어요. 운전자는 브레이크 에어가 고장 나 페달이 밟히지 않았다고 말했어요. 엔진 브레이크로 속도를 줄여 보려 했지만 그마저 제대로 걸리지 않았다고 해요. 화물차는 앞서 가던 승용차를 들이받았고, 그 충격으로 승용차가 앞의 SUV와 부딪혔어요.

 

그다음 운전자는 핸들을 돌려 도로 옆 긴급제동시설로 들어갔어요. 화물차는 자갈 오르막을 거슬러 올라가다 위쪽 감속 드럼에 닿으며 멈춰 섰어요. 60m 남짓한 오르막과 자갈이 속도를 대부분 없앴고, 남은 힘은 드럼이 받아 낸 거예요. 다친 사람은 있었지만 목숨을 잃은 사람은 없었어요. 내리막 아래로 계속 내려갔다면 더 많은 차와 부딪혔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이 시설이 생긴 이유

같은 창원터널 앞에서는 2017년 11월, 20리터짜리 엔진오일 통 수십 개를 싣고 달리던 2.5톤 화물차가 중앙분리대를 넘어 넘어지는 사고가 있었어요. 쏟아진 기름통이 반대편 차로의 차들 위로 떨어지면서 불이 났고, 3명이 숨지고 5명이 다쳤어요. 뒤따르던 운전자는 사고 직전 화물차가 좌우로 흔들리며 달렸다고 말했고, 브레이크 고장이 원인으로 거론됐어요. 이 사고를 계기로 2020년 창원 방향 내리막에 긴급제동시설이 만들어졌어요. 2024년 사고 뒤 관계자들은 이 시설이 없었다면 2017년 같은 참사가 되풀이될 수 있었다고 말했어요.

 

표로 보는 창원터널 긴급제동시설

창원터널 긴급제동시설의 모습을 숫자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아요. 축구장 길이의 절반 남짓한 오르막에 어른 허리 높이쯤 되는 깊이로 자갈을 채운 셈이에요.

 

항목 내용
만들어진 때 2020년
길이·폭 60m · 10m
경사 10% 오르막
바닥 깊이 1m의 자갈
끝부분 감속 드럼 약 20개
계기 2017년 창원터널 화물차 사고

 

고속도로 내리막 옆으로 갈라져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자갈 깔린 긴급제동시설
긴급제동시설은 오르막과 깊은 자갈, 끝부분의 감속 드럼으로 차를 멈춰 세운다.

 

자갈 오르막이 차를 멈추는 세 가지 방법

첫째는 오르막이에요. 내리막에서 붙은 속도는 오르막을 올라가는 동안 높이로 바뀌어요. 공을 언덕 위로 굴리면 저절로 느려지는 것과 같은 원리예요.

 

둘째는 깊은 자갈이에요. 바퀴가 자갈 속으로 파묻히면 앞의 자갈을 밀어내야만 앞으로 나갈 수 있어서, 바퀴가 구를 때마다 큰 저항이 생겨요. 브레이크 없이도 속도가 빠르게 줄어드는 이유예요. 자갈 사이의 모래도 같은 역할을 해요.

 

셋째는 끝부분의 감속 드럼이에요. 그래도 남은 속도는 드럼이 찌그러지면서 받아 내요. 도로가 갈라지는 곳의 노란 충격흡수시설과 같은 원리예요. 차로 양옆의 가드레일은 차가 옆으로 튕겨 나가지 못하게 붙잡아 줘요. 가드레일이 충격을 흘려보내는 방식은 가드레일 글에 정리해 뒀어요.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구간의 긴급제동시설에는 자갈과 흙, 타이어가 함께 쓰였어요. 시설마다 재료와 모양은 조금씩 달라도, 오르막과 무른 바닥으로 속도를 없앤다는 원리는 같아요. 평평한 땅에 자갈만 깔면 차가 멈출 때까지 훨씬 긴 거리가 필요해요. 자갈을 오르막에 까는 것은 짧은 거리 안에서 차를 세우기 위해서예요. 다만 빠른 속도로 들어가면 차를 다루기 어렵고, 오르막 위에서 멈춘 뒤 뒤로 밀려 내려올 수도 있어요.

 

멈춘 차는 바퀴가 자갈에 깊이 파묻혀 혼자 힘으로 빠져나오기 어렵기 때문에 보통 견인차로 끌어내요. 차가 어느 정도 상할 수는 있지만, 브레이크가 듣지 않는 차가 내리막 아래 교차로나 앞차로 그대로 내려가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어요.

 

긴급제동시설의 자갈에 바퀴가 파묻힌 채 멈춰 선 대형 화물차
바퀴가 자갈에 파묻히면서 브레이크 없이도 속도가 빠르게 줄어든다.

 

내리막에서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 이유

브레이크는 바퀴의 회전을 마찰로 붙잡으면서 움직이던 힘을 열로 바꿔 버리는 장치예요. 긴 내리막에서 브레이크를 계속 밟으면 이 열이 빠져나갈 틈이 없어요. 여름에는 뜨거운 아스팔트의 열까지 더해져 브레이크가 더 쉽게 달아올라요. 브레이크 패드가 지나치게 뜨거워지면 마찰력이 뚝 떨어지는데, 이것을 '페이드 현상'이라고 해요. 이때는 제동력이 평소의 절반 아래로 떨어지기도 해요. 열이 브레이크 오일까지 전해져 오일이 끓으면 그 안에 기포가 생기고, 페달을 밟아도 힘이 바퀴까지 전달되지 않아요. 이것이 '베이퍼 록'이에요. 대형 화물차는 압축 공기로 브레이크를 작동하는데, 창원터널 사고처럼 공기 계통에 문제가 생겨도 페달이 먹히지 않을 수 있어요.

 

내리막에서 타는 냄새가 난다면 브레이크 패드와 디스크가 300℃ 넘게 달아올랐다는 신호예요. 그래서 내리막에 들어가기 전에 기어를 한두 단 낮춰 엔진 브레이크로 속도를 조절하고, 발 브레이크는 짧게 나눠 밟는 것이 기본이에요. 엔진 브레이크는 바퀴가 엔진을 돌리게 만들어 엔진의 저항으로 속도를 줄이는 방법이라, 브레이크 패드에 열이 쌓이지 않아요. 대형 화물차에는 배기 브레이크 같은 보조 제동장치도 달려 있어요. 긴급제동시설은 이 모든 방법이 통하지 않았을 때 쓰는 마지막 수단이에요.

 

우리나라 어디에 있을까

긴급제동시설은 주로 고속도로나 길고 가파른 내리막에 만들어요. 대표적인 곳이 영동고속도로 강릉 방향 대관령 구간이에요. 한국도로공사는 이 구간을 시속 100km로 달리는 차가 많아 제동장치가 고장 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지기 쉬운 곳이라고 설명했어요. 2010년 보도에 따르면 이 구간에는 긴급제동시설이 2곳 있었고, 2006년 25대, 2007년 34대, 2009년 32대의 차가 이 시설로 들어가 멈췄어요. 해마다 수십 대가 이 자갈길 덕분에 더 큰 사고를 피한 셈이에요. 창원터널처럼 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긴 내리막이 이어지는 곳이나, 미시령 같은 고갯길에서도 볼 수 있어요.

 

브레이크가 듣지 않을 때의 순서

페달이 쑥 들어가거나 밟아도 속도가 줄지 않는다면 당황하지 말고 아래 순서를 떠올려 주세요.

 

  1. 비상등을 켜고 경적을 울려 주변 차에 위험을 알려요.
  2. 기어를 한 단씩 낮춰 엔진 브레이크를 걸어요.
  3. 긴급제동시설이 보이면 진입로 정면을 향해 곧게 들어가요. 비스듬히 들어가면 자갈 속에서 차가 돌거나 기울 수 있어요. 안내표지로 남은 거리를 미리 확인해 두면 당황하지 않고 들어갈 수 있어요.
  4. 자갈에 들어간 뒤에는 핸들을 단단히 잡고 똑바로 나아가요. 차가 심하게 흔들리는 것은 자갈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5. 멈춘 뒤에는 뒤로 밀리지 않게 주차 브레이크를 걸고, 안전한 곳으로 피한 뒤 신고해요. 고속도로라면 한국도로공사 콜센터(1588-2504)로도 알릴 수 있어요.

 

승용차 운전자가 알아 둘 것

긴급제동시설은 대형차만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승용차도 긴 내리막에서 브레이크만 계속 밟으면 똑같이 과열될 수 있어요. 자동변속기 차라도 변속 레버의 수동 모드나 저단 위치를 쓰면 엔진 브레이크를 걸 수 있어요. 긴 내리막에서는 큰 화물차 바로 앞이나 바로 뒤에 오래 붙어 달리지 않는 것이 좋아요. 비상등을 켜고 경적을 울리며 내려오는 화물차가 보이면 차로를 비켜 길을 열어 주세요. 긴급제동시설 입구 앞에 차를 세우거나 길을 잘못 들어 그 안으로 들어가는 일도 없어야 해요. 창원터널 긴급제동시설에도 길을 잘못 들어 진입한 차가 있었다고 해요. '내리막 경사' 표지가 보이면 그 앞에서 미리 기어를 낮춰 두는 습관도 도움이 돼요. 비 오는 내리막이라면 미끄럼방지 포장이 깔린 구간이라도 속도를 먼저 줄이는 것이 우선이에요.

 

도로가 준비해 둔 마지막 비상구

긴급제동시설은 쓰이지 않을수록 좋은 시설이에요. 대부분의 날은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자갈길로 남아 있지만,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 단 한 번의 순간에 여러 사람의 목숨을 지켜요. 이 시설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길고 가파른 내리막이라는 뜻이기도 해요. 내리막 옆에서 자갈 깔린 오르막을 보면, 그 앞에서 미리 기어를 낮추고 속도를 줄이라는 신호로 읽어 주세요.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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