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니는 왜 도로로 뛰어들까, 로드킬을 막는 유도울타리와 생태통로

2026. 10. 2. 13:15ㆍ도로 구조·사고 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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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5년까지 5년 동안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로드킬은 4,806건입니다. 그중 82.1%가 고라니였고, 41.9%가 자정부터 오전 8시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로드킬은 동물만의 사고가 아닙니다. 어두운 새벽에 갑자기 뛰어든 동물을 피하려다 핸들을 꺾으면 운전자가 더 크게 다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산에서 내려온 고라니 한 마리가 도로에 닿기까지의 길을 따라가면서, 그 길목마다 어떤 도로 시설이 기다리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고속도로 로드킬 5년의 기록

항목 내용
고속도로 로드킬(2021~2025년) 4,806건
동물별 고라니 82.1%, 너구리 7.0%, 멧돼지 4.8%
많은 달 5~6월에 34.7%
많은 시간 자정~오전 8시에 41.9%
연도별 변화 2021년 1,115건 → 2025년 793건(28.9% 감소)

 

5년 동안 4,806건이면 고속도로에서만 하루 평균 2.6건꼴로 로드킬이 일어난 셈입니다. 그나마 고속도로만의 숫자입니다. 국도와 지방도, 시골길까지 모두 합치면 규모가 훨씬 커집니다. 국립생태원 집계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2023년까지 최근 5년 동안 전국에서 확인된 야생동물 찻길 사고는 15만 4,566건이었습니다. 고양이가 5만 7,076건으로 가장 많았고, 고라니가 4만 5,424건으로 뒤를 이었습니다. 산과 들을 지나는 고속도로에서는 고라니가, 주택가와 도심 도로에서는 고양이가 가장 많이 희생된다는 뜻입니다. 동네 골목에서 천천히 달려야 하는 이유가 사람만은 아닌 셈입니다.

 

숲의 가장자리: 왜 도로로 나올까

고라니는 한반도와 중국 일부에만 사는 사슴류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멸종 우려가 있는 취약종으로 분류합니다. 세계적으로는 귀한 동물이지만 우리나라 산과 들에는 흔해서 도로 사고도 가장 많습니다. 도로는 이런 동물의 서식지를 둘로 가릅니다. 먹이를 찾는 곳과 쉬는 곳, 물을 마시는 곳이 도로 양쪽으로 나뉘면 동물은 어떻게든 도로를 건너야 합니다. 5~6월에 사고가 몰리는 것은 고라니가 새끼를 낳고 먹이를 찾아 활발하게 움직이는 시기와 겹치기 때문이고, 새벽에 사고가 잦은 것은 고라니가 주로 해 질 녘부터 새벽까지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동물의 눈에 도로는 그냥 트인 땅입니다. 차가 얼마나 빨리 다가오는지 가늠하지 못하고, 강한 불빛을 마주하면 그 자리에 얼어붙기도 합니다. 로드킬이 사람에게도 위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다 자란 멧돼지는 몸무게가 100kg을 훌쩍 넘기도 해서, 부딪히면 차가 크게 부서지고 탑승자가 다칠 수 있습니다. 동물이 갑자기 멈춰 서면 운전자가 피하려다 다른 차와 부딪히기도 합니다. 그래서 로드킬을 줄이는 시설은 동물에게 도로를 조심하라고 가르치는 대신, 동물이 도로에 올라오지 않게 하고 안전하게 건널 길을 따로 내주는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첫 번째 길목: 유도울타리

숲에서 내려온 고라니가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도로를 따라 길게 이어진 울타리입니다. 이 울타리의 이름은 유도울타리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동물을 막기만 하는 시설이 아니라, 울타리를 따라 걷게 해서 안전하게 건널 수 있는 길로 이끄는 시설입니다. 한국도로공사는 전국 고속도로에서 총 3,354km의 유도울타리를 운영하고 있고, 해마다 50km씩 더 설치할 계획입니다.

 

울타리가 제 역할을 하려면 끊긴 곳이 없어야 합니다. 울타리가 중간에 끝나거나 아래에 틈이 생기면 동물은 그 틈으로 도로에 들어오고, 오히려 울타리 안쪽에 갇혀 빠져나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환경부가 2023년 개정한 「생태통로 설치 및 관리지침」이 유도울타리를 생태통로를 중심으로 상행과 하행 양쪽으로 각각 1km 이상 이어서 설치하도록 정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새벽 안개 속 고속도로를 따라 이어진 유도울타리 옆에 고라니 한 마리가 서 있는 모습
유도울타리는 동물을 막는 동시에 생태통로 쪽으로 이끄는 시설이다.

 

두 번째 길목: 생태통로

울타리를 따라 걷던 고라니는 결국 생태통로에 닿습니다. 생태통로는 도로 위를 가로지르는 육교형과, 도로 아래로 지나는 터널형으로 나뉩니다. 육교형은 위에 흙을 덮고 나무와 풀을 심어 양쪽 숲이 이어진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터널형은 하천이나 물길 옆에 만들어 작은 동물이 드나들기 좋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치는 로드킬이 자주 난 곳과 동물이 다니는 흔적을 조사해서 정합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23년 10월 기준 전국에 564곳이 있습니다.

 

생태통로는 동물이 실제로 써야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개정된 지침은 통로의 모양을 동물의 눈높이에 맞췄습니다. 도시 밖에 짓는 육교형 생태통로의 최소 폭은 7m에서 10m로 넓혔고, 통로로 들어가는 진출입로의 경사는 1:2보다 완만하게 하도록 했습니다. 터널형은 입구의 넓이를 길이로 나눈 '개방도'를 0.7 이상으로 맞추도록 했습니다. 입구가 좁고 길이가 긴 어두운 굴은 동물이 들어가기를 꺼리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함께 쓰는 통로는 벽을 세워 사람과 동물이 다니는 길을 나누도록 했습니다.

 

한국도로공사는 생태통로에 인공지능 카메라를 달아 어떤 동물이 얼마나 지나가는지 살피고 있습니다. 통로가 실제로 쓰이는지 확인해야 울타리와 통로를 어디에 더 보탤지 정할 수 있습니다. 고속도로 로드킬 자료도 공공데이터포털에 공개되어 있어, 어느 노선에서 사고가 잦은지 누구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지켜야 할 것도 있습니다. 생태통로는 동물을 위한 길이므로 산책로처럼 드나들지 않는 것이 좋고, 통로 입구 주변에 차를 세우거나 쓰레기를 버리면 동물이 가까이 오지 않습니다. 유도울타리가 쓰러져 있거나 아래가 뚫린 곳을 보면 도로관리기관에 알려 주는 것도 로드킬을 줄이는 방법입니다.

 

고속도로 위를 가로지르는 나무와 풀로 덮인 육교형 생태통로
육교형 생태통로는 흙을 덮고 나무를 심어 양쪽 숲이 이어진 것처럼 만든다.

 

세 번째 길목: 도로 위의 운전자

울타리와 통로가 모든 동물을 막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길목은 운전자의 몫입니다. 산을 끼고 도는 구간이나 하천 주변에는 야생동물 주의표지가 서 있습니다. 이 표지는 동물이 자주 건너는 곳이라는 경고이므로, 표지를 보면 특히 새벽과 밤에 속도를 줄이는 것이 좋습니다. 단풍을 보러 산간 도로를 찾는 가을에는 해가 짧아져 어두운 시간에 산길을 달리는 일이 늘어나니, 주의표지가 보이는 구간에서는 한 번 더 속도를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도로에서 동물을 만났을 때 한국도로공사가 권하는 요령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경적을 울려 동물이 스스로 도로 밖으로 달아나게 합니다.
  2. 상향등은 켜지 않습니다. 강한 불빛을 받으면 동물이 눈이 부셔 그 자리에 멈춰 서기 쉽습니다.
  3. 급하게 핸들을 꺾거나 급브레이크를 밟지 않습니다. 동물을 피하려다 옆 차로의 차나 가드레일과 부딪히는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4. 평소 규정 속도를 지킵니다. 속도가 낮을수록 동물을 발견하고 반응할 시간이 늘어납니다.

 

사고가 났다면

동물과 부딪혔거나 도로 위에서 동물 사체를 봤다면 직접 치우려 하지 말고 신고합니다. 고속도로는 한국도로공사 콜센터(1588-2504), 일반도로는 지자체 콜센터(120)에 알리면 됩니다. 신고할 때는 어느 방면 몇 번째 차로인지, 주변에 어떤 건물이나 표지가 있는지 알려 주면 담당자가 빨리 찾을 수 있습니다. 다친 동물이나 사체를 맨손으로 만지면 감염 위험이 있으니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차가 부서졌다면 보통 자동차보험의 자기차량손해(자차) 담보로 처리하게 되므로, 안전한 곳에서 사고 장소와 파손 부위를 사진으로 남겨 두면 좋습니다. 사고로 차가 멈췄다면 무엇보다 사람의 안전이 먼저입니다. 비상등을 켜고, 뒤따르는 차가 달려오는 차로에 서 있지 말고 가드레일 바깥처럼 안전한 곳으로 피한 뒤 신고합니다.

 

도로가 동물과 나눠 쓰는 길이 되려면

로드킬은 동물이 도로를 건너야만 하는 곳에서 일어납니다. 유도울타리는 동물이 도로에 오르지 않게 하고, 생태통로는 건널 길을 따로 내주고, 주의표지는 운전자에게 속도를 줄일 이유를 알려 줍니다. 고속도로 로드킬이 5년 사이 30% 가까이 줄어든 것은 이런 시설이 조금씩 늘어난 결과이기도 합니다. 새벽 산길에서 주의표지 하나를 보고 속도를 줄이는 운전자가 늘어나면, 이 숫자는 더 줄어들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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